보이지 않는 구슬
▶ 유튜브 영상 보기작품이 무엇인지부터 말하면, 다만 이것은 구슬이 빠진 팔찌입니다.
제목의 'BIZ'는 비즈, 곧 구슬을 뜻합니다. 팔찌를 팔찌로 만들어 주는 건 줄에 꿰인 구슬인데, 색과 광택과 무게를 가진 그 구슬이 사라지고 나면 남는 것은 구슬을 꿰던 가느다란 줄, 지금 눈앞의 이 얇은 금속 원뿐입니다.
제목이 말하는 '보이지 않는 구슬'이란 이 비어 있는 자리를 뜻합니다.
여기서 미니멀리즘 조각가 프레드 샌드백을 떠올려 볼 만합니다. 그는 철사와 실 한 가닥으로 형태의 윤곽만 만들어, 덩어리와 무게 없이도 부피와 공간이 존재하게 했습니다.
이 작품도 원리가 같습니다.
구슬이라는 실체는 없지만, 줄이 그리는 원 안에서 우리는 있어야 할 구슬을 저절로 떠올리게 됩니다. 없는 것이 오히려 또렷하게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비평가 루시 리파드가 1968년에 말한 '미술의 비물질화'도 같은 맥락입니다. 물질로서의 오브제는 사라지고, 관념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흐름을 말합니다.
이 작품에서 실제로 남은 것은 구슬도 장식도 아닌 하나의 개념, 곧 '비어 있음'입니다. 작가명이 '비어있음'인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정리하면 이 작품은 한 번의 반전입니다.
팔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슬을 지우고, 평소엔 보이지 않던 줄만 남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채워진 것이 아니라 비워진 것을 보게 되고, 있음이 아니라 없음을 통해 팔찌를 알아보게 됩니다. 존재를 부재로, 장식을 구조로 뒤집는 이 조작 하나가 작품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다만 — 비어있습니다.
팔찌의 이름은 '스테인레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은 물건들에는 저마다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손목 위에서 조용히 빛나는 이 작은 팔찌 역시 단순히 비즈를 엮어 만든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세 번의 실패와 수많은 긴장, 그리고 두 사람의 진심 끝에 비로소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작업은 손목 위에서 은은하게 반짝이는 모습을 상상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신예지 작가님은 하나하나 비즈를 꿰며 가장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만들어갔습니다. 부드러운 색감이 차곡차곡 이어질수록 완성에 가까워졌지만, 예상치 못한 첫 번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팔찌는 손목 둘레에 맞게 제작되었지만, 정작 손을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착용은 가능해 보여도 실제로는 끼고 벗을 수 없는 길이였던 것입니다. 완성을 눈앞에 둔 작품은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아쉬움을 삼킨 채 비즈를 모두 풀어내고, 손의 크기까지 고려해 길이를 다시 계산하며 두 번째 제작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또 다른 긴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팔찌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중간중간 들어간 써지컬 비즈였습니다. 변색에 강하고 알레르기 걱정이 적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재료였지만, 작업실에는 남은 수량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같은 디자인을 다시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을 다시 꿰는 모든 과정이 조심스러웠습니다. 혹시라도 비즈가 흩어질까, 귀한 재료를 잃어버릴까 하는 마음에 손끝에는 자연스럽게 긴장감이 실렸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위기는 마지막 순간 찾아왔습니다.
모든 비즈를 연결하고 마지막 매듭만 남겨둔 상태에서, 당시 비즈니스 동호회 호스트였던 이혜지 작가님이 마무리를 도와주기 위해 매듭을 묶었습니다. 그 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실이 힘을 견디지 못하고 '툭' 하고 끊어졌습니다.
순식간에 비즈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열심히 디자인하고 다시 꿰었던 신예지 작가님은 허탈함에 말을 잃었고, 좋은 마음으로 마무리를 도와주려던 이혜지 작가님 역시 미안함과 당혹감에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흩어진 비즈를 하나씩 주워 담았습니다.
무엇보다 써지컬 비즈가 모두 남아 있는지가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다. 바닥을 살피며 하나씩 개수를 확인하던 시간은 짧았지만 아주 길게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귀한 비즈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고, 두 사람은 다시 처음부터 차분히 실을 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이 팔찌는 세 번째 탄생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하나의 이름이 생겼습니다.
사실 이 포인트 비즈에는 원래 별다른 이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업을 하던 중 한 작가님이 써지컬 비즈를 자꾸만 '스테인레스'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웃으며 "써지컬이야." 하고 바로잡아도, 어느새 또 "스테인레스"라는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그 작은 말실수는 작업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밈이 되었고, 결국 누구나 그 비즈를 '스테인레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팔찌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스테인레스'가 되었습니다. 실패의 순간에도 함께 웃게 만들었던 작은 에피소드까지 이 작품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세 번의 제작, 두 번의 해체, 마지막 순간의 실패까지.
그 시간을 견뎌낸 끝에 완성된 이 팔찌에는 처음 의도했던 디자인보다 훨씬 많은 것이 담기게 되었습니다. 만드는 사람의 집중력과 끈기, 함께 작업한 사람의 미안한 마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정성이 촘촘히 엮여 하나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쉽게 만들어진 물건은 쉽게 잊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실패를 견디고, 귀한 재료를 끝까지 지켜내며 완성된 이 팔찌는 다릅니다. 겉으로는 조용히 빛나는 작은 비즈 팔찌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과 함께 만든 사람들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스테인레스'.
이름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은 금속의 성질만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 번의 실패에도 다시 시작했던 마음, 끝까지 완성을 향해 나아갔던 두 사람의 끈기와, 실수마저 웃음으로 간직한 소중한 추억이야말로 이 팔찌가 가장 오래 간직하게 될 가치일지 모릅니다.
오늘도 이 작은 팔찌가 누군가의 손목 위에서 그날의 이야기를 조용히 기억하며 오래도록 빛나기를 바랍니다.